상처와 흉터
사람마다 몸에 흉터가 없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지금 자신의 몸에 흉터가 있는지 없는지를 점검해 보라.
아마도 자신의 몸에 최소한 한 두개 정도의 상처자국인 흉터들이 있을 것이다.
흉터는 상처의 흔적이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아물지만 흉터는 여전히 우리의 몸에 상흔(傷痕)으로 남는다. 그리고 흉터를 보고 있노라면 왜 그 흉터가 생겼는지가 뚜렷이 생각난다.
모든 상처에는 흉터가 남는다.
그러나 흉터는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훈장이 될 수도 있고, 숨기고 싶은 창피한 흔적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몸의 흉터가 마음의 상처가 되어 마음에서부터 절망하는 사람도 있다.
<심장수술을 받은 딸 아이가 몸의 흉터 때문에 고민하자 어느 날 아버지가 우울해 하는 딸을 꼭 껴안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얘야! 그 흉터는 너의 약점이 아니라 네가 큰 병을 이겨냈다는 징표란다. 어린 나이에 그 큰 수술을 견뎌내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어. 그래서 아빠는 네 흉터가 오히려 자랑스럽단다.”>
- 김혜남의 《어른으로 산다는 것》 중에서 -
이민자의 삶, 그것은 어쩌면 마음 한구석에 상처와 흉터를 내재하고 사는 삶이다. 그래서인지 이민자들은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도 민감해 있고, 별 것 아닌 것 같은 일에도 감정을 나타내며, 쉽게 상처를 받는 것 같다.
상처는 반드시 흉터로 남고, 옹졸한 사람들은 억지로 자신의 입장을 강변하면서 자신의 흉터를 침소봉대(針小棒大)하여 부풀리기도 한다.
자신의 화려한(?) 이력을 말하면서 상대는 무시하고, 자신의 대단함(?)을 말하면서 상대는 평가절하 하려고 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인간관계의 밑바닥에 서로에 대한 믿음이 많이 상실되어 있는 것 같다.
내가 가진 답답함은 왜 이민자가 되면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이 되는 것 같고, 넓은 사람이 속 좁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고, 능력 있는 사람이 무능한 사람 같이 되어가는가 하는 것이다. 이민자이기 때문일까?
자신도 한국인이면서 마치 한국인이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자신도 한국인이면서 한국인을 폄하하고, 한국인을 못 믿을 존재로 말한다.
민족적 아픔과 부끄러움이 따로 있겠는가?
뉴질랜드 땅에 살면서 본토인을 비롯하여 주변의 다른 민족들이 우리를 높여 보게 하려면 우리는 스스로 민족적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 자랑스런 대한민국인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상처를 받고, 흉터를 남기는가?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의 상처는 누구의 탓으로 돌릴 일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 스스로 상처를 자처(自處)하고 흉터를 만드는 경향이 훨씬 많다. 사람들이 상처를 자처하는 이유는, 자기를 알아달라는 것이다. 내게 맞추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상대가 응하지 않으면 상처를 받는다. 조금만 깊이 자신을 생각해 보면 많은 원인이 자기에게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상처는 치유 받아야 한다.
치유 받지 않은 상처의 흉터는 그것을 보고, 생각할 때마다 그 흉터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불신과 원망의 벽을 높이 쌓게 한다. 그러나 치유 받은 상처는 비록 상흔(傷痕)의 흉터는 남아있을지라도 상처를 통해 사람이 깊어지고 성숙해지도록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겠는가?
사람은 어거스틴의 말처럼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 전까지는 참된 안식을 얻을 수 없다.
하나님께는 고치지 못할 사람이 없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면 우리 인생의 아무리 큰 상처도 아물게 되고, 큰 상처의 큰 흉터를 돌이켜 볼 때 다시 아픔이 되지 않고 원숙한 사람이 되게 한다.
하나님의 품은 넓고 크다.
하나님이 품지 못할 사람은 없다. 그리고 하나님이 치유하지 못할 상처는 없다.
상처가 단순히 흉터로 끝나는 것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을 의식하며 믿는 믿음으로 자신의 상처와 흉터를 승화시켜야 한다. 사람들이 보고 듣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상처를 삶의 완숙함과 원숙함의 재료로 삼는 사람은 자랑스런 코리언의 위상을 뉴질랜드 타우랑가에 심는 대한민국인(大韓民國人)이며, 참으로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