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 사람의 진면목 - 김기오목사님

편집자 0 3,295 2012.09.09 23:56
사람의 진면목(眞面目) 

나는 사람을 볼 때 옆 눈으로 보지 않는다. 상대의 얼굴을 정면으로 본다. 
사람의 마음을 대함에 있어서도 옆 마음으로 대하지 않는다. 마음과 마음이 마주 서는 심정으로 대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얼굴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상대를 직시하는 것은 내 얼굴에 나타난 내 마음을 그에게 보여주고 그 사람의 얼굴에 나타난 그의 마음을 보면서 내 진솔함을 전달하고 상대의 진솔함을 받아들이기 위함이다. 
찌그러진 옆 눈과 옆 마음으로, 즉 자신의 속을 따로 두고 사람을 대하거나 비뚤어진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면 내 마음도 상대의 마음도 불편하다. 그리고 위선적이 된다. 

목회자로서 주님의 교회와 성도들을 성기면서 이런저런 많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왔다. 가깝게는 부모형제, 친척을 비롯하여 교인들 가운데 정치, 경제, 사회적인 면에서 나름대로 안정된 자신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서부터 중산층, 그리고 정말 빈한한 삶을 힘겹게 이어가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의 사람들을 보아 왔다. 
그런데 한가지 확실한 것은 겉으로 보여지는 것을 가지고 그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연이나 사물은 겉으로 나타난 모습으로 평가하는데 문제가 없지만 사람의 진면목은 겉으로 나타난 모습만으로는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복잡하다. 말 한마디에도 단순하지 않은 복선이 깔려 있다. 

타우랑가 안에 살고 있는 이민자들은 학력, 지식, 물질, 권세, 명예의 프라이드(Pride)를 누려본 사람들이고, 특히 뉴질랜드에서 한국 교민들이 살기 쉬운(?) 오클랜드나 웰링턴, 헤밀턴, 크라이스트처치와 같은 큰 도시를 선택하지 않고 타우랑가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특이성을 가지고 있다. 
인생의 살아온 나이를 떠나서 한 가닥씩 했고, 한 가닥의 기질이 몸에 배어 있고, 모두가 알 만큼 알고, 가질 만큼 가졌고, 남에게 기대지 않아도 살 만큼은 다 있는데다가 나름대로 머리가 되고 앞 자리에 앉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 말 한마디에서 푸대접 받고 싶지 않고, 예우 받는 것에서 자존심 상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타우랑가 교민들이 가지고 있는 특질들은 굉장한 강점이자 잠재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의 특출함이 난무한다면 좋은 강점과 잠재능력이 교민 사회의 화합, 그리고 모두가 다 잘되고 잘 살 수 있는 협력의 체제를 이룩하는데 때로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희생하고 손해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모두의 공통된 마음이다. 
어느 누구라서 상처와 아픔이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우리는 먼 나라 이국(異國) 땅 뉴질랜드 타우랑가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깊은 곳에서 상처와 외로움의 돗자리를 기본적으로 깔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조그마한 일에도 불편한 관계가 되고, 조금만 서운함을 느껴도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와 함께 밥 먹은 사람이, 함께 손 잡은 사람이, 얼마 전까지 함께 웃던 사이가 찬바람이 도는 냉랭한 사이로 변하고 심하면 원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 만약 내가 어느 사람과 친밀해지면 나 역시도 그 사람의 원수와 간접적인 원수가 된다. 그의 말을 듣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내게도 새겨지기 때문이다. 
밧줄의 매듭은 풀지 않으면 묶인 채로 그대로 있게 된다. 그러나 사람관계의 매듭은 활동력이 있기 때문에 풀지 않으면 더욱 죄여져서 나중에는 파경에 이르게 된다.

형이 아우한테 말했다. 
“그 사람의 진짜가 보이는 것은 함께 여행을 했을 때, 식사를 할 때, 도박판에 앉았을 때, 
그리고 위급함이 나타났을 때이다.” 

-정채봉의 ≪간장 종지≫ 중에서-

보통 때는 잘 보이지 않는다. 
여행을 해 보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보인다. 발바닥도 보이고 머리꼭지도 보인다. 
위기 상황이 닥치면, 실익의 문제가 눈앞에 있으면 그 사람의 진면목이 더욱 더 잘 보인다. 
그 때의 모습이 그의 평소 모습이다.

자신의 진면목을 스스로 진단해 본 적이 있는가?
세월의 무게가 많은 사람일수록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도 깊어야 하지만 꼭 그렇지 만은 않다. 세월은 사람의 경각심과 삶 자체를 무디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민 사회의 삶에서,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 서운함과 섭섭했던 감정들을 내려놓고 진솔해보자. 내가 먼저 마음의 빗장을 열어보자. 마음에서부터 얼굴까지 열린 웃음을 웃어보자. 
인간관계의 불편함과 현실적인 실익의 문제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서고 내가 잡고 있는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우리 손에는 관계의 회복과 삶의 축복이 쥐어질 것이고, 우리의 
삶은 그만큼 풍요로워질 것이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의 합성어이다. 자신의 앞에 놓인 위기를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로 활용하는 사람이 큰 사람이다. 그런 진면목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우리는 한 나라 대한민국, 배달의 한 민족, 이곳에서 KOREA, KOREAN으로 불리는 존재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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