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

편집자 0 3,026 2012.09.09 23:48
 이정선 목사 | 2006·08·17 03:39 | HIT : 750 | VOTE : 84
font_plus.gif font_minus.gif font_save.gif font_default.gif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해도 로맨스

최근에 한국에서는 기록적이라 할 만한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고 한다. 한 친구는 머리가 활동을 정지한 것 같다고 했고, 밤에도 한낮의 열기가 조금도 식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잠을 이룰 수 없다고들 했다. 폭염이라는 극단적인 단어가 동원되어야 사람들은 자신들의 감정이 조금이나마 공유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리 강렬한 의미의 단어들을 나열한다 해도 그 지독하다는 더위에 공감이 되지 않는다. 내 몸은 여전히 이곳 뉴질랜드의 차가운 겨울에 떨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고구조는 기본적으로 자신을 기준으로 작동하도록 되어 있다. 외부의 모든 자극과 현상은 자신의 신념과 감정의 필터를 통과하여 해석되고 관찰된다. 그래서 나타나는 현상은 자신과 타인 간의 불일치이다. 이 불일치가 모든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 된다. 똑같은 행위라도 내가 하면 로맨스가 되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 되는 것은 바로 이 불일치에서 기인하는 현상이다.

자기중심적 사고가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남의 자식보다 내 자식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모성애는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자기중심적 사고이다. 자기중심적 사고가 없다면 가족도 없고 애국심도 없을 것이다. 위대한 사상체계를 수립한 사람들 역시 자기중심적 사고를 바탕으로 그것을 발달시킨 사람들이고, 영웅들도 자기중심적 사고에 근거하여 큰 업적을 쌓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일반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자기중심적 사고는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고 관계를 해치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자기중심적 사고의 경향이 강하다는 것은 자신과 타인 간의 불일치가 크다는 것을 뜻한다. 이 불일치는 에너지로 변환된다. 성격이 공격적인 사람은 이 불일치가 큰 사람이다. 그래서 불일치의 크기에서 비롯되는 에너지는 타인을 향한 공격적인 성향으로 발산되는 것이다.

자기중심적 사고는 또한 이기적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의 부재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메마르고 딱딱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긴장 속에 살게 되고, 불필요한 과다경쟁이 유발된다. 결국 자기중심적 사고에 의한 삶은 공멸이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와 타인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내가 한 것이 로맨스라면 다른 사람이 한 것도 로맨스로 봐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 자신에게만 너그럽던 마음이 타인을 향해서도 너그럽게 열리는 순간, 우리는 공존의 비밀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양심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최소한의 분량이다. 내가 잘못하고 모자라는 것이 있다면, 최소한 다른 사람에게도 그만큼은 용서하고 아량을 베풀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아는 만큼만이라도 다른 사람의 잘못에 너그러울 줄 알아야 한다.

한번은 성난 군중이 한 여자를 끌고 예수님께 데려왔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여자를 어떻게 할 것인지 그것이 사람들은 궁금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는 군중의 행위가 더 흥미로웠다. 그 순간 군중의 눈에는 여자의 죄만 보였을 뿐, 자신들 역시 동일한 죄인이라는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유난히 비판적인 사람들이 종종 있다. 사회정의를 부르짖고 개혁을 주장한다. 그들의 눈에는 부패하고 무능한 지도자들만 보이는 것 같다. 정말 흠결이 없고 순수한 분들이 개혁을 주장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추종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도 별 다를 것이 없으면서 남을 비판하고 개혁을 외치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금자씨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너나 잘하세요!"

내가 깨끗하면 다른 사람의 더러움을 책망할 수 있다. 그러나 나도 더럽다면 최소한 다른 사람의 더러움을 비웃고 손가락질해서는 안 될 일이다. 결국 자신과 타인을 동일시함으로써 그 불일치를 줄이는 것이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길이고, 그렇게 해서 우리는 갈등과 분쟁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솔직히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못하겠다. 나부터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인이고 남들보다 나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제에게서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이 보일 때, 그것을 책망하기보다 내 가슴으로 안고 아파하게 된다. 그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 아픔으로 나의 잘못과 형제의 잘못이 함께 치료되고 깨끗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