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 팥으로 메주를 쑤는 세상’ - 김덕경목사

편집자 0 2,911 2012.09.09 23:27
콩으로 메주를 쑤는 것은 상식이다. 필자가 어릴 때에 가을이면 어머니께서 콩을 두어 말쯤 삶아서 벽돌처럼 만들어 겨울 내내 짚으로 묶어 천정에 매달아 두었다가 메주덩이가 곰팡이가 푹 슬면 봄에 숯과 빨간 고추를 같이 섞어서 간장을 만든다. 전에는 서울이나 시골이나 어디를 가더라도 겨울이면 메주덩이가 안방에 메달려 있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세상이 변하면서 사람들이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갔다. 그런데 팥으로 메주를 쓴다니(?)…

믿는다는 것은 이처럼 팥으로 메주를 쓴다 해도 믿어야 하는 어리석음(?)이 있어야 믿기가 쉽다. 우리의 삶에서 믿는 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중요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믿는다는 말을 한자로 풀이해보면 信, 사람 人자와 말씀 言자와의 합성어이다. 즉 사람의 말이라는 뜻이다. 옛 중국에서는 사람의 말은 믿어야 한다는 철학이 있었는지 모르지만(요 나라와 순 나라 때에는 이렇게 믿어도 좋은 세상이었다고 한다)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말이 아닌가 한다. 영어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있다. 

"You have my words.", "나는 내가 한 말을 지킨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의 세상은 사람의 말을 믿지 못할 곳으로 바뀌고 말았다. 즉 믿음이 점점 적어지는 세상으로 바뀌어가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모두에게 불행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 사람의 말을 믿지 못하는 세상은 천국이 될 수가 없다. 아내가 남편의 말을 믿지 못하고, 남편이 아내의 말을 믿지 못하는 가정,그 가정은 문제의 가정임에는 분명하다. 대통령의 말이나, 장관이나 국회의원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믿음이 없기에 서로가 불행한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고 문화가 발달할 수록 사람들끼리 더욱 믿고 의지하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점점 더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은 왜 일까? 우리는 정녕 믿음이 없는 세대에 살고있는 것일까? 

성경은 믿음의 약속을 받아 사는 삶이라고 했다.
믿음은 바로 이 약속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히11:1).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니”라고 말한다. 즉 믿음은 미래적인 것을 위해 오늘을 선택하며 약속을 바라보며 사는 삶이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실상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부모 된 사람이 자녀를 보면 그 자녀의 '실상'이 있고, 그 자녀에게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있다. 예를 들어서 내 아이의 싹이 노랗게 되어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 참으로 걱정이 이 다음에 무엇이 될지, 사람 구실을 할 지 걱정이 태산 같을 것이다. 이 것이 내 아이의 실상이다. 그런데 이대로 말하는 것은 내 아이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이다. 비록 내 아이가 그렇다 하더라도 내 아이를 향한 부모의 마음, 즉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있는 것이다. 부모는 그 상황 속에서도 내 아이가 훌륭하게 되길 바라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아이의 '실상'을 말하지 않고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말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요구한다. 지금의 현실과 소망 중 어디에 그 가치를 두고 살 것인가에 대해 우리의 이성을 계속적으로 괴롭힌다. 선택은 우리의 분별을 요구한다. 진정으로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로 하여금 판단할 것을 요구한다.

지금 이 시대는 스피드시대요 불확실시대요 라고 표현한다. 앞날에 대한 불확실한 가운데 늘 불안하고 초조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자살하고 세상의 쾌락으로 이겨보려고 한다. 

믿음의 삶은 비젼을 가진 삶이다. 현대인의 특징은 현실위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대부분이 목적을 가지고 살기보다 지금의 안정을 위해 자신의 생활을 결단한다. 많은 것을 갖기 원하는 것도 현재의 안정을 잃을까 봐 미리 준비하는 행동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신의 생활의 안정에만 기울인다. 신앙을 통하여 환경속에서 얻어지는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따지고 그 이익여하에 따라 움직인다. 참으로 몸과 마음이 바쁘다.

그런데 자꾸 하나님을 믿으라고 주위에서 이야기들을 한다. 여지껏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잘 살았는데, 하나님 없이 나 혼자 스스로 해결하고 잘 살았는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나님이 어디에 계신데? 하나님은 바로 당신의 마음 속에, 당신이 모르고 지난 세월동안에 늘 함께 하셨다. 우리인생의 주인 되신 분께서 함께하시겠다고 하셨고 축복해 주시겠다고 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라며 그 약속을 꼭 붙잡으시기 바란다. 예수를 믿기 전에 우리는 실상을 말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은 후에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말한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믿음으로 말하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실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체험을 한 믿는 사람들은 늘 입을 열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이야기 한다.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드리는 일이요 인간답게 살아가는 최소의 조건인 것이다. 믿음이 있어야만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의 행복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마지막 세대를 향해 말씀하시기를 내가 믿음을 보겠느냐고 한탄 하셨다. 믿음은 단순한 종교적인 고백이 아니며. 믿음은 바로 삶이며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인간이 되게 하는 능력인 것이다. 이 믿음은 바로 하나님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콩으로 메주를 쑤는 것을 믿으라는 말이 아니라 팥으로 메주를 쓰는 것을 믿으라고 말하고 싶다. 한번 속는 셈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나의 삶을 모두 맡기는, 인생의 마지막 도박을 할 용기는 없는지? 그것을 내가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힘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능력이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 자신이 이루려고 한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내가 나의 돈과 지식과 명예로 무엇 인가를 이루려고 발버둥치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팔짱을 끼신 채 가만히 우리의 힘이 쇠잔해질 때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하루 하루가 곤고한 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가진 것 그리고 내 생각과 내 머리만 의지하지 말고 주님 앞에 온전하고 순전한 마음을 가지고 나갈 때에 주님께서 약속하신 능력의 손이 우리의 일을 대신해 주실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해 보려고 발버둥칠 때 하나님께서는 일손을 놓으시고 쉬시고 바라 보시고만 계신다. 그러나 내 힘으로는 안 된다고 포기한 후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고 매달릴 때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겸손한 나를 당신의 도구로 삼아 위대한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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