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인들이 자녀 학교 선택시 고려하는 것 중 하나

편집자 0 3,630 2012.09.10 02:40
내 아들은 이제 몇 달 후면 뉴질랜드 초등학교(Primary School)에 진학하게 된다. 

입학 준비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러 많은 가운데 실용적인 차원에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사항들이 있다.

그 첫 번째는 어느 학교로 진학시킬 것인가이다. – 우리 부모님들처럼 오직 하나의 프라이머리, 인터미디어트, 하이 스쿨 밖에 없는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자녀들을 기르던  1990년대 이전의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저 멀리 푸케코헤 힐(Pukekohe Hill)에서 버스를 타고 오클랜드에 있는 학교로 통학하던 열성적인 가족의 몇몇 아이들이 있긴 했지만 그들은 극소수에 속했다.

그러나 요즘 시대에 당신이 오클랜드에 산다면 당신은 아이가 기저귀를 차고 있을 때부터 거의 병적으로 당신의 아이를 위한 (“최고의” 유치원부터 시작하여) “최고의” 학교를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다. 

난 이것이 ‘중산층병(middle class disease)’의 하나라고 확신한다.

그와 같은 증상은 아이가 4살이 될 무렵부터 긴장 상태로 발전하고,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조바심도 느끼게 된다.

우리 아들을 보낼 학교를 선정하는데 있어 나에게는 한가지 정말 사소하고, 필시 (많은 사람들이) 지겹다고 느낄만한 딜레마가 하나 있다. 

우리는 집 근처에는 훌륭한 공립학교가 있는 오클랜드의 한  “좋은” 지역에 살고 있다. 우리는 운이 좋은 것이다.

공교육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했던 나의 교육 철학과 사교육(사립학교)에 관한 내 남편의 양면적인 태도로 판단한다면 

집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로 우리 아이들을 입학시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다. 

그러나 그리 쉬운 결정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사교육(사립학교 교육)을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나는 스스로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 아들의 장래에 대해 경도되어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는 사립학교라는 것이 어떤 곳일 지 조금의 ‘맛’이라도 보기 위해 옆 동네에 있는 한 장로계 사립 프라이머리/인터미디어트 스쿨을 방문했다.

우리가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가운데 운동장에 다다랐을 때, 그곳에는 제대로 차려 입은 남자아이들이 크리켓을 즐기고 있었다. 학교 건물과 시설은 매우 훌륭했고, 선생님들은 열정적으로 보였으며 아이들은 (학교생활에) 적극적이었다.

우리 아들이 이처럼 멋진 학교에 진학하는 길에는 약 2만 달러 정도의 학비라고 하는 ‘작은’ 문제가 가로막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누구라도 만약 돈이 문제가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들을 그런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걸 인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돈이 문제가 된다. 학비를 내기 위해 모기지를 얻어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빚이라고 자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를 주저하게 만든 유일한 점은 사실 학생들이 대개 “흰색”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백인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 내 자신도 백인이니까 – 그러나 내 아이들에게는 상당부분 파키스탄 피가 흐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처럼 백인 일색의 분위기가 과연 장차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의 뉴질랜드 생활을 보다 잘 준비하게 만들 인종적 혼합(ethnic mixing)을 장려할 수 있을 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과연 ‘다문화’ 교육이 장차 뉴질랜드 생활에 중요한 것일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많은 다른 이들처럼 내 아이들도 마오리나 폴리네시안 혹은 동남아시안들과 그리 많이 어울리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은 이미 지배적이지는 않지만 파케하(Pakeha)가 주를 이루는 사립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 탓에 공립학교 역시 꽤 “하얗다”.

우리는 사설 의료보험료를 내고 있기 때문에, 공공의료에 의존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대하는 전문의가 아닌 다른 전문의에게, 긴 대기번호 없이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뉴질랜드의 사회는 대체적으로, 특히 도시 지역에서 이미 계층화되었다.

푸케코헤에 살던 시절을 회상해 보면, 나는 항이(hangi)을 먹고, 프라이머리 스쿨에 다니면서 포이(poi, 마오리 전통춤)와 마오리 노래를 배웠다. 인터미디어트에 다니면서는 매년 마라이(marae, 마오리의 聖所)에서 잤다. 우리는 마오리 아이들과 학교에 다니면서 그 아이들이 지닌 신체적 우월성을 경외했고, 그 아이들의 스타일을 따라 했다. 

나는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마오리 친구가 있었지만, 대학시절 파트타임 일을 하면서 가졌던 폴리네시안들과의 소통을 제하고 나면 그 후로 내 삶은 도리어 단일문화적이 되었다.

내 나이의 많은 사람들과 일반 대중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다문화(multi culturalism)라는 개념을 포용하지만, 현재 뉴질랜드 사회가 나아가는 상황으로 볼 때 세월이 흐르면서 덜 현실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대부분의 공립 유치원과 학교에서는  마오리 문화를 가르치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비 파케하 사람들이 없이 그러한 노력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아이가 3살 혹은 4살이 되면서 갖게 되는 모든 심각한 고민들에 대해 나는 동감한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에게 정작 중요한 질문은 과연 어떤 교육을 아이들에게 제공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조금은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모두가 동등한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싶어한다. 

이 문제는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간격을 점점 벌려놓은 것처럼 느껴지는 경제 – 솔직히 말하자면 정부정책 –로 인해 아직 한동안은 많은 도시 생활자들의 삶 이면에서 계속 팽창하는 거품이 될 것이다.
By Dita De Boni 

출처: http://www.nzherald.co.nz/keeping-mum/news/article.cfm?c_id=1502464&objectid=1071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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