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伏날에/유영호

시인유영호 0 2,583 2016.08.02 23:50
어느 伏날에
 
             유영호
 
삼계탕 집에 신발이 수북하다
오늘 먹지 않으면
지구의 종말이 오는 것처럼
성대한 통과의례를 치르고 있다
번호표를 받아들고 뻘쭘이 서서
땀 흘리며 쩝쩝거리는
분주한 입들을 훑어 보다
오늘 죽어야 하는 닭들을 생각했다
알에서 깬 지 한 달 남짓인데
무에 그리 큰 죄를 지었다고
화탕지옥을 헤매야 하는지
 
사람위해 죽어가는 닭들아
너무 서러워하진 마라
마지막 가는 길에
온갖 보약으로 배라도 채우니
똥주머니만 안고 죽는 인간보다
의로운 죽음이 아니겠느냐
닭은 인간을 위해 보약을 먹고
인간은 똥을 위해 보약을 먹는 세상
달아난 입맛에 떠밀려
식당 밖으로 나와 버린다
사람대신 닭들이 죽어가는 날.
 
#군더더기
사무실에서 마주 보는 곳에 오래된 삼계탕집이 있습니다.
보통때도 장사가 잘 되지만 복날이 되면 미어터집니다.
나도 그 틈에 끼어 한 그릇 먹으려고 줄을 섯다가
이런저런 생각에 입맛이 달아나서 슬그머니 나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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