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방랑시인 1 2,877 2016.03.21 00:10
나무 되신 아버지
 
                   유영호
 
햇빛 가득한 거실 창가
흔들의자에 앉은 아버지는
군복에 총을 잡고 잠이 드셨다
몇 년 전 정신을 놓으시고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더니
언제부턴가 한국전쟁을 지휘하신다
아버지의 손톱을 깎아드렸다
기억은 오래 전에 토막이나
거미줄로 흔들리는데
더 키워야 할 것이 남았는지
턱수염과 머리카락은
겨울나무처럼 무성했다
어설픈 솜씨로 머릴 자르고
면도를 해드리니 눈을 뜨셨다
거울을 보여 드리자
아이처럼 하얗게 웃으셨다
모든 것 다 내어주어
뼈만 남은 놀이터 은행나무처럼
아버지는 의자에 야윈 몸을 심으시고
스스로 나무가 되셨다
바람은 창밖으로 부서지는데
아버지, 내 안에서 흔들리신다.
 
#군더더기
아내는 수술을 하고 입원한지13일,
딸아이 가족은 뉴질랜드로 떠난지 10일,
다가오던 봄이 등을 돌려
초록물결의 일렁임조차 멈췃습니다.
 
요즘은 가슴이 총을 맞아 숭숭 뚤린 느낌입니다.
 
처음에는 부모님과 아들 딸까지
여섯명이 살던 집이었는데
아버지를 시작으로 하나 둘 내 곁을 떠나버려
둘만 남은 집에 아내마저도 병원신세입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으니 일상이 재미가 없습니다.

그러니 밥맛이 없어 나같이 식탐 많은 사람도
먹는 것이 귀찮아 지니
얼마전부터는 아침을 씨리얼로 해결합니다. 
 
끼니는 뭘 먹어도 상관없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의 부재가 더 힘이 듭니다.
 
정수라/아버지의 의자
https://www.youtube.com/watch?v=OESchHEUCi4

Comments

편집자 2016.03.21 01:10
한국에 계시는 아버님 생각에 저도 아침에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