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맘 유학칼럼> 뉴질랜드에서 왠 나비도둑?

편집자 0 5,600 2013.02.12 01:00
토니가 학교에 갔다가 신발 상자를 하나를 신주단지 모시듯이 들고 들어왔다. 신기한걸 보여주겠다며 식탁 한가운데 놓고 손가락을 달달 떨며 뚜껑을 열어 보인다. ‘으이그 그게 뭐냐 징그러’ 털이 부숭부숭난 송충이만한 줄무늬 애벌래였다. ‘모나크 버터플라이예요. 친구가 오늘 하루 가져가도 된다고 했어요. 클래스 팻(교실에서 키우는 작은 벌레나 햄스터 등) 이라서 돌아가면서 케어해요.’
 
그림책에 나오는 검은 줄무늬의 애벌레 서너 마리와 무슨 나뭇잎들이 담겨져서는 이 아이에서 저 아이로 옮겨가면서 관찰하는 클래스활동과제쯤 되는 모양이었다. ‘참 자연 친화적이네’ 그러고 보니 학교에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가 교내 정원을 돌아보니 그 애벌레가 잔뜩 붙어있는 나무들이 꽤 많이 보였다. 벌레가 번데기를 만들고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걸 보는 재미에 아이들은 봄 가을로 신이 난다.

 신발상자가 안쓰러워서 팻 샵에 가서 작은 플라스틱 어항을 한국 같으면 5천원이면 살만한 걸 20불을 주고 마련해서 속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 주었더니 종일 책상 앞에 놓아두고 눈을 떼지 못한다. ‘녀석들이 똥도 싸놓고 지저분허다. 그만 좀 들여다봐라!’
 
이제 새해로 마흔을 넘긴 정신머리는 역시 표가 난다. 사건이 벌어진 건 새 학기의 첫 주가 시작되어 새로 짠 레슨 스케줄이 몸에 배지 않으면 들낙 날락 하루에도 서너 번씩 왔다 갔다 하던 그때였다. 한국 엄마들은 유별나다. 공부도 많이 시키고 과외활동도 많이 해서 차를 뺐다 넣었다 그 집 앞은 유별스럽게 분주하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하는 키위도 있다.
 
‘야아!!! 수영 레슨이다. 얼른 옷 갈아 입자, 두 명이 수영시작하고 끝난 다음에 저녁도 먹고 들어오면 얼추 3시간 이상 걸리니까, 3-4개월에 한번씩은 해야 하는 벼룩폭탄을 놓고 나가기로 했다. (뉴질랜드는 워낙 집안도 네춰럴해서 다양한 벌레들과 공생할 때가 종종있다.) 그래, 그 정신머리로 식탁 위에 버젓이 놓고 나간 신주단지 애벌레 통이 옴팍 폭탄을 맞은 거다.
 
‘어….애벌레가 안 움직여요’ 느즈막히 저녁먹고 들어서는데 토니가 울상이다. 그 옆에 사마귀를 키우고 있던 통까지 같이 피해를 입었다. 울집 벌레들이 몽땅 원폭을 맞은거다. 애들이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아, 맞다. 옆집에 수십 마리도 더 다닥다닥 붙어있는 그 벌레들을 봤는데, 그거 내가 따다 주마 울지 마라, 애미가 정신 줄을 놨다. 내 탓이다.’ 얼른 마당으로 나가 무릎 정도밖에 펜스가 오지 않는 옆집 마당에 있는 벌레 먹은 나뭇잎을 하나 죽 뜯어내고 있었다.
 ‘드르륵’ 현관문이 열리더니 옆집 할머니 달려 나오고, 이층 창문에 열리더니 왕 할머니 실내복 바람으로 뭐라뭐라 소리지른다. ‘아니 왜 남의 벌레를 훔쳐가느냐!’ 뭐 이런 말인 거 같은데 뭐지?
 
노인들만 세분이 모여사시는 옆집은 늘 조용하고, 오전부터 오후내내 정원가꾸기에만 열중한다. 난 손에 애 벌레 한 마리를 들고 현장범으로 붙잡힌 꼴이었다. ‘ 아니 왜이리 흥분들이야. 이거 그냥 벌레 한 마리 가져가는데 왜? ‘ 이해가 안돼서 웃음이 나왔다.
 
 우리 애가 이 벌레를 키우는데 내가 벼룩폭탄을 터뜨려서 다 죽였어. 하나 가져가면 안돼? 했더니 할아버지는 그래라 하시는데 두 할머니는 아직도 펄펄 뛴다. ‘미안해. 자…벌레 가져가라.’ 하고 드릴려니 할아버지가 ‘말아라’ 아이들 가져다 주라며 후한 선심을 쓰셨다. 아이들에게 가져다 주고, 참 별일이네 하고 있었는데, 토니가 ‘어! 옆집 할아버지가 스완 플랜트에 네트를 치고 있어요!’ (스완플랜트는 모나크나비가 사는 나무이다.) 돌아보니 진짜 할아버지가 그 벌레나무에 전체적으로 모기장을 치고 있는 거였다.
 
‘이거 뭐 내가 또 벌레 도둑질을 할까봐 저러는 거야? 참을 수 없다’ 애들한테 벌레를 빼앗아 당장 들고 나가서, ‘아이고 정말 미안하다, 난 그냥 벌레 한 마리였는데, 앞으로 절대 가져가지 않을게, 이럴거 없다.’ 좀 기분이 상해서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가 웃으시며 이리 와보란다. 화단에 펜스아래에 화분 밑에 창가아래에 달랑달랑 번데기들이 달려있을걸 보여주며, 이런걸 본적 있느냐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이제 나비가 되는걸 볼 거라고, 너네 정원에서 날아 갈 거야 아이들이 좋아 할거라고 한다. ‘아…그래? 벌레 많다고 자랑질이라니 …우리 아이 벌레 상자에도 그게 두 개정도 달려있어. (너만 있는 거 아니거든)’ 난 아까 나 때문에 나무에 모기장을 치던 할아버지 때문에 꽁해 있었다.
 
토니가 모나크 버터플라이에 대한 저널을 쓰기 시작했다. (뉴질랜드 아이들은 저널이라는 형식으로 스스로 자신의 관심분야를 조사하여 자신만의 책을 만든다. 이건 교과서로 배우는 한국식 교육과 가장 차이 나는 자율적인 학습방법이라 정말 마음에 들고 부모와 선생님이 칭찬세례를 부어주기만 하면 알아서 잘한다.) 이리저리 조사를 하는 아이 뒤에서 들여다보니 나도 덩달아 그 나비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이거 그냥 나비가 아닌데?
 
타우랑가의 가을이 시작되면서 이제 모나크 버터플라이의 시즌이다. 앞마당 한 가득 호랑나비가 날아다닐 거다. 작년에도 옆집에서 키운 애벌레 덕에 아이들이 마당에서 나비를 쫓으며 즐겁게 뛰었었다. 그냥 아무 벌레가 아니라, 뉴질랜드 사람들이 정말 사랑하고 아끼는 벌레들이었던걸 이제 알게 됐다. 꽃 파는 가든시장에 가도 스완플랜트에 너댓마리의 모나크나비 애벌레가 달려 판매가 된다. 얼마 전 Querry Park에서 스완플랜트가 모자라 모나크나비 애벌레들이 먹을게 부족하니 벌레들을 분양해 가던가 스완플랜트를 기부해달라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뉴질랜드에는 공식 Monarch Butterfly NZ Trust 단체도 있고, 범 국민 홍보활동도 활발했다.
 
그 일이 있고 일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내가 나비도둑이 맞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뉴질랜드 사람들이 얼마나 모나크나비를 사랑하는지도 새삼 느낀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다른 나라의 문화를 모르고 함부로 행동했다가는 이런 무례함을 저지르는 일은 솔직히 적지 않았다. 무지와 오해 로 그들의 친절에 색안경을 끼기도 한다. 외국생활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은가보다.
 
뉴질랜드에서 제일 질투 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 top 2는 앞마당에 산 너머에 수시로 뻥뻥떠서 사람 멍하게 만드는 오색무지개랑(쌍무지개는 말할 것도 없고) 바로 이 모나크 버터플라이다. 옆집 할아버지가 스완플랜트에 모기장을 치던 건 애벌레들을 새나 다른 천적들이 쪼아먹을까 보호하려고 치는 거라고 손을 내저으며 나를 이해시키려 했던게 기억난다.
할아버지 미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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